참 싸움꾼 프랑스대대 참전勇士들

013 1950년 ~ 1953년의 추억들 독일(베를린에 있던) 육군대학 교장이었던 칼 폰 클라우제비츠 장군은 그의 저서 <전쟁론>에서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다”고 말했다. 나는 프랑스 정부가 우방국의 국민을 구원하기 위해서 뿐 만 아니라, 프랑스의 모든 공공건물 입구에 200여 년 전부터 볼 수 있는 3대 원칙 자유 - 평등 - 박 애 중 첫 번째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 한국에 1개 대대를 보내도록 결정한 많은 이유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전쟁론의 문구를 부연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자유는 프랑스가 이미 인도차이나에서 싸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국제 공산주의에 의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었다. 1950년 그때 프랑스는 4년 동안 완전히 자유를 잃었던 제2차 세계대전의 시련으로부터 막 벗어났었다. 다시 말해 프랑스는 피 점령의 경험, 추방의 경험, 침략하는 공산주의의 경험 을 갖고 있었다. 이런 면에서 프랑스의 파병은 완전히 정치적인 범주에 속하는 것이었다. 이 결정은 양국이 우호 조약을 체결한 1886년 6월 4일 이래 분명히 한국에 대한 가장 중요하고 가장 뚜렷한 정치적인 행동이었다. 북한 공산군의 남침 초기 로부터, 서울에 있던 프랑스의 외교관들은 북쪽으로 끌려가 3년여 동안 포로 생활을 하게 된다. 그 중에 현재 외무성의 감찰총감인 메아드모르氏도 있었다. 1950년 11월, 유엔군의 일원으로서 프랑스대대는 부산에 상륙했다. 대대는 군(軍)본연의임무를수행하면서, 그리고다른수단에의한프랑스의정책을계속 유지해나가면서 어느 정도 특별한 대사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두려움도 불평도 없이 1950년 10월, 프랑스대대는 오부르의 병영에서 창설되었다. 대대는 10월 25일 출발해서 11월 29일 부산에 도착하도록 예정되었다. 출발 전에 전 국민의 인사 를 정부 대표로 대대원들에게 전하기 위해 막스 르줸느 국방 차관이 참석했다. Ⅰ. 참 싸움꾼 프랑스대대 참전勇士들 참 싸움꾼 프랑스대대 참전勇士들

RkJQdWJsaXNoZXIy MTMyNzcx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