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싸움꾼 프랑스대대 참전勇士들

019 부산 첫 지원자 중의 한 사람인 앙드레 르뫈느는“조용한 아침의 나라”와의 첫 만 남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그것을 들어보자. : 1950년 11월 29일 수요일, 부산! 쌀쌀한 안개 속에서 아또스Ⅱ호가 도착의 고동을 울린다. 배는 거대하고 우중충한 두 암벽으로 형성된 항구의 좁은 통로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지옥의 문!”이라고 우리의 운명을 낙관하지 않는 듯 한 수병이 말했다. 실제로 그날 아침의 뉴스들은 안심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맥아더 장군은 20만 중공군의 대반격을 알렸다. 우리들은 한국에 거주하기 위해 온 것도, 유엔군의 깃발 아래 퍼레이드를 하러 온 것도 아니었지만 모두가 흥분과 야릇한 희열 속에 싸여 있었다. 최근까지 우리들을 무겁게 누르고 있던 뭔지 모를 극도의 불안감이 마침내 사 라졌다. 한국이다. 우리는 한국을 본다. 회색 빛 하늘 아래 멀리 엷은 황갈색의 봉우리들이 드러났다. 도처에 바위와 자갈들이 있는 이 벌거벗은 대지 위에서 생명체는 모두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모두가 프랑스의 한 도(道4))처럼 방어해 야만 할 이 험난한 나라를 빨리 보려는 듯 갑판 위에 나와 있었다. 대략 두 달 전, 정확히 9월 20일, 나는 한국전에 참전하기 위해 서명을 했고 곧, 오귀스뜨 마장따가(街)의 상인인 32살의 삐에르 앙드레 르뫈느는 유엔군 산하 프랑스대대의 한 병사가 되었다. 아내인 수잔이 나에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참전하기 위해 가면서 행복이나 즐거움을 확실히 느낀다면, 잘 결정한 것이다.”라고. 그런데 아니다. 나는 전쟁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영웅 들의 혈통을 따르지도 않았고 또 광신자들의 패거리를 따르고 싶지도 않다. 그 러나 가게 안에서 나는 늘 답답함을 느꼈고 내게 있어 가장 좋았던 시절은 내 가 덩케르크, 빌하껭, 튀니지, 이탈리아 등 전장에 있었을 때였다는 생각이 자 주 떠오르곤 했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한국에 왔다. 망스 근처에 있는 오부르의 기지에서 훈련을 받은 후 출발하는 날 르미르 소령은 우리에게 말했다.“대대의 생명은 짧을 것 이나 영광스러울 것이다.”그것은 약속이 되었다. 4) 프랑스의 행정구역인 데빠르트망(한국의 道에 해당) Ⅰ. 참 싸움꾼 프랑스대대 참전勇士들 참 싸움꾼 프랑스대대 참전勇士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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