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싸움꾼 프랑스대대 참전勇士들

025 그 시체들은 손을 등 뒤로 묶인 채로 또 피의 늪 속에 잠긴 채로 마을 어귀에 있곤 했다. 일부는 목이 잘린 채였고, 일부는 사전에 한 고문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총구를직접대고짓이겨서형태를알수도없었다. 이희생자들의대부분은 한국인들이었지만 그들 가운데 미국인들도 더러 있었다. 나와 함께 입대했던 친구인 윌리암 하드도 이처럼 죽었다. 그는 지난 7월 28일 진주 남쪽에서 순찰을 나갔다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르뫈느는 랠프 하사에게“전선에 나가기도 전에 나의 사기를 꺾어 놓으려 작심 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랠프는 미국인 같은 사람만이 답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낭만적인 대답을 했다.“아니. 하지만 지금 당신은 무엇 때문에 당신이 싸 우러 왔는지를 알게 되었지” 몽끌라르 전투와폭격, 매복, 날씨가 어떻든 밤낮없이 계속되었던 경계의 추억, 그리고 전 우들과 우리들에게 특히 유명했던 지휘관에 대한 추억들이 함께 항상 떠오른다. 우리들에게 있어 대대에서 가장 유명했던 인물은 분명히 몽끌라르 장군이었다. 그는프랑스에서가장훈장을많이탄역전의용사였으며가장많은전쟁의상흔 을 지닌 장군이었다. 가장 특이했던 것, 그것은 본명이 <샤를르 라울 마그렝-베 르느레이> 인 몽끌라르가 어느 날 두 조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것이다. 즉, 헝가리의 귀족이었던 부친의 조국과 프랑스인이었던 모친의 조국 : 그는 프랑스를 선택했다. 아주 거리낌 없이 선택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부친 의 이름을 따르지 않고 모친의 이름인 마그렝을 받아 들였다. 부다페스트에서 불어 교수였던 모친 안느 마그렝은 1892년에 몽끌라르를 헝가리에서 낳은 후 프랑스로 데리고 왔다. 몽끌라르는 브쟝송에 있는 빅토르 위고 고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16세 때 그는 외인부대에 입대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모병 담당 하사관이 그에게 말했다. : “자네는 어쨌든 너무 어리지 않나…” Ⅰ. 참 싸움꾼 프랑스대대 참전勇士들 참 싸움꾼 프랑스대대 참전勇士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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