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싸움꾼 프랑스대대 참전勇士들

045 도쿄의 병원에서 퇴원한 후 회복을 위해 꼬뼁은 프랑스로 후송이 된다. 그러나 그의 진짜 가족이 있는 곳은 한국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아주 어렸 을적부터부모없는고아였기때문에. 그는자기동료들과형제들을되찾기위해 다시 지원병으로 나선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후에, 대대는 인도차이나를 향해 떠났고, 꼬뼁은 인도 차이나에서 베트콩에 의해 포로가 된 관계로 또 다른 모험을 경험하게 된다. 그는 중대장에 의해 처해진 징벌 덕분에 중대장이 본래 의도했던 것과는 다르게 살아남게 된다. 실제로 중대장은 운전병이었던 꼬뼁을 닥도아의 전초로 가도록 명령한다. 그런데이튿날포탄이그가운전하던지프차위에떨어져새로교체된운전병은 죽고 반면에 꼬뼁은 월맹군의 포로가 된 것이다. 우리가, 아주 큰 오토바이 사고 후에 프랑스 북부의 한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르네 꼬뼁을 다시 찾은 것은 1985년이었다. 모두가 그는 오래전에 죽었을 것이라 믿고 있었는데… 재회는 큰 축제를 열게 했다. 꼬뼁은 그의 진정한 가족과 전우와 형제들을 되찾았다. 호전주의자들 많은인명을앗아가고피비린내나는일련의전투들이대대생활을특징지었다. 단장의 능선 전투 후 아또스Ⅱ호로 앙드레 르뫈느, 르네 꼬뼁, 꼬르, 베르나르와 함께 도착했었던 첫 번째 지원병들 중 적어도 이때까지 건강한 채로 남아 있던 지원병들은 프랑스로 다시 떠났다. 증원대가 결원을 보충하기 위해 도착했고 대대의 생활은 계속 되었다. 대대장도 먼저 보레이유 중령이 맡았다가 제르니 중령으로 바뀌었다. 1952년 10월, 대대는 철의 삼각지 중 하나인 철원 부근의 전선으로 다시 이동 했는데, 우리는 포로로 잡힌 중공군 장교로부터 대대가 배치되어 있는 모든 지역 에 아주 중요한 대 공격이 곧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서울의 운명은 이 전투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었다. Ⅰ. 참 싸움꾼 프랑스대대 참전勇士들 참 싸움꾼 프랑스대대 참전勇士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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