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싸움꾼 프랑스대대 참전勇士들

063 알제리아의 콩스탕티나에 있던 기욜로 소위가 몇 달 전에 그의 형을 잃었을 때 사람들은 그에게 프랑스로 귀국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그는 중대장인 가리그 대위와 함께 머무르기 위해 거절했다. 또한 우리들이 한국에서부터 이미 알고 있는 고뜨로 하사도 그가 깊이 존경하는“상관”을 떠나기를 거부했다. * 위 사실은 1957년 10월 26일 가리그 대위의 장례식 때 기요 대령이 한 추모사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힘 1792년 9월 20일의 발미 전투에서와 같이 한국전에 참전한 프랑스대대의 동료이며 전우들인 당신들 모두가 생각날 때, 나는 오부르에 가거나 생제르망 앙레이를 찾아가서 당신들을 다시 본다. 짐이라곤 통틀어 자그마한 가방 하나 아니면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로 당신 들은 무엇이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모두 같은 욕망, 즉 한국전에 참여할 지원병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흥분되어 있었고, 당신들 가슴 속에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열정의 불꽃이 타고 있었다. 사회의 각계각층으로 부터 모여든 당신들은 프랑스 국민의 가장 대표적인 표본이었다. 당신들 가운데 몇 사람이“미아들의 교차로”에서 서로 다시 만났는가! 같이 참전은 했지만 서로 전에 친분이 없었던 사람들을. 미아들의 교차로 : 국방성이 있는 생-도미니크 거리의 관리관 사무실에서! 당신들 가운데는 너무 변화가 없고 단조로운 가족의 모임을 깨뜨리기를 원하는 못된 녀석들도 있었고, 또 딴 길을 모색하면서 가족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려는 망나니 녀석도 있었다. 익살꾼이 있었고, 떠버리들이 있었으며, 변덕쟁이, 줏대 없는 녀석들도 있었다. 또한 용사임을 입증할 기회만을 조용히 기다렸던 노련한 용사들도 있었다. 그러나 슈퍼맨(超人)은 없었다. 머리 위에 돌격부대의 검은 베레를 쓴 당신들은 프랑스 군대에서 독특하고 유일한 대대를 구성했다. 3년 동안 당신들은 인간으로서 또 병사로서의 직분을 다했다. 몽끌라르 장군 휘하에서나 보레이유 중령 또는 제르니 중령 지휘 하에서나 당신 들은 항상 여러분들에게 부여된 임무를 완수 했다. 뒤무리에와 켈레르만 지휘 하에서 싸웠던 발미의 지원병들처럼 당신들은 온 국민의 찬탄을 만들어냈다. Ⅰ. 참 싸움꾼 프랑스대대 참전勇士들 참 싸움꾼 프랑스대대 참전勇士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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