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싸움꾼 프랑스대대 참전勇士들

087 1951년 1월 4일, 서울이 다시 공산군 손에 떨어졌으나 UN군은 재조직을 통해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을 재개하여 1951년 3월 12일, 서울을 재탈환했고, 공산 군을 밀어붙여 거의 전쟁 발발전의 경계인 38선을 연하는 선까지 전선을 확보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경과를 요약해보면 초기에는 북한공산군이 공격에 성공했었지만, 곧 UN군이 반격에 성공하여 획기적 승리를 거두었고, 중공군의 개입에 따라 UN군이 후퇴했다가 재반격하 게 된 후‘아코디언 전쟁’같았던 전쟁 양상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즉 38선 주위에서 전선이 고착되면서 지루한 전쟁이 이어집니다. 결국 1951년 6월 23일, 소련대표 말리크가 UN에 휴전을 제의해와 회담이 개시 되었는데처음에는개성에서, 1951년 7월부터는판문점에서회담이실시됩니다. ‘말의 전쟁’인 휴전회담은 2년 이상 끌다가 마침내 정전협정을 맺게 되고, 그 협정은 오늘날까지 유효하게 됩니다. 휴전회담 동안에도 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제한적인 군사작전이 지속되었습니다. 특히 평강-철원-김화를 잇는‘철의 삼각지대’는 주인이 매일 바뀌기도했습니다. 이때의전투는그야말로참호전과소모전의연속이었습니다. 한국전쟁 동안 한국인들은 깊은 적대감을 겪어야했고, 도시-마을-공장-철도 등은 폐허가 되었으며, 농토는 방치되고 가축은 사라졌으며, 평화 시에는 곡식이 남아돌던 한반도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기근에 시달렸습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은 우리나라의 긴 역사를 통틀어 가장 참혹했던 살상 전이었는데 약 110만여 명의 인명이 희생되었습니다. Ⅱ. 한국 전쟁 - 프랑스 지휘 참모대 발표 참 싸움꾼 프랑스대대 참전勇士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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