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전쟁이다! Ⅲ. 1950년 한국 l 49 국권을 다시 쉽게 유린 할 수도 있는 적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잊은 것 같았다. 그 첫 일요일 저녁, 다른 비행기 한 대가 서울로 특파원들을 수송할 예정이었으나 나는 해변에서 너무 늦게 돌아오는 바람에 포함되지 못해 차선책으로 공산 침략군 에게 폭격을 퍼붓는 전투기들을 준비시키는 미 공군기지가 있는 큐슈로 가서 맥아더 사령부가 제공하는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맥아더사령부가 자정 직후에 서울행 비행기가 무기한으로 취소되었다고 알렸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는 첫 번째로 전화 위복이 된 나의 행운이었다. 나의 차선 조치는 특파원 사이에서 갑자기 가장 뜨거운 카드가 되었다. 그런데도 내가 마침내 4명의 다른 특파원들과 이타주케 이착륙장과 인접해 있는 후쿠오카 행 비행기를 탄 건 화요일 오전 중반쯤이나 되어서였다. 눈 아래 펼쳐진 빛에 반짝 이는 논을 보면서 나는 남태평양의 섬들과 내가 항공사진을 찍을 당시 적의 대공 포화에유명을달리하고내가슴에어깨를기대었던전투기조종사한명을떠올렸다. 나는 또 과달카날의 신비한 나비들, 해병대와 같이했던 3년, 장비들을 망치는 곰팡이 그리고 시체처럼 악취를 풍기며 우리 피부를 산성 물질같이 망가뜨리는 오물들을 기억했다. 나는 일본과 일본사람, 그리고 평범했던 최근의 수년보다 훨씬 더 길게 느껴졌던 전쟁의 작은 덩어리를 기억했다. 자리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나는 그것들을 잊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일본은 이전에 다른 섬들이 나의 집이었듯이 내 인생의 5년을 지낸 나의 집이었다. 우리는 연료가 바닥나기 전에 착륙하려고 우리 뒤에서 굉음을 내는 두 대의 F-80 제트기와 함께 이타주케에 착륙했다. 우리가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나는 인접한 오른쪽 활주로에서 구경 50 대공포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병사들을 보았다. 나는 곧바로이새로운전쟁에대한나의첫사진을찍었다. 그때또두대의 F-80 전투기가 쉭굉음을내고내려오며공중전승리를상징하는이중좌우회전을하면서번쩍였다. 나는 충격에 찬 의문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미 연합통신사의 톰 램버 트를 발견하고 돌아봤다. 우리가 보는 조종사들이 그저 제트기로 멋 부리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아니라면 미국이 직접 살상전에 다시 개입됨에 따라 이들도 적을 사살하고 돌아왔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멋 따위를 부리고 있던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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