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전쟁이다!

아니었다. 화요일 밤 6대의 북한 전투기가 격추되었다는 전과 기록이 알려졌는데 그중의 3대는 바로 이 젊은이들에 의한 것이었다. 편대 대기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게시판 벽 가까이 앉아 있는 젊은 조종사를 알아보았다. 그의 얼굴의 무엇인 가가 나에게 신속히 사진을 찍도록 만들었다. 다음날 나는 우연히 그 젊은이가 한국 전쟁에서 첫 번째로 적기를 격추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아직도 내가 그의 얼굴과 구부정한 몸에서 보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내가 첫 번째로 북한 전투기를격추한그와그동료들의사진을찍고돌아보는바로그순간에대형수송기 들이 활주로에 착륙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활주로 끝에 두 개의 격납고가 등록대, 급식줄, 적십자구호소 등을 갖춘 거대한 접수센터로 전환되어 있었다. 수송기가 활주로를 빙빙 돌아 멈췄을 때 소개민들이 그 장소를 가득 채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허름한 옷만을 걸친 채로 한국으로부터 왔고, 단지 몇 사람만이 코트를 입고 있었다. 많은 남자들이 지난 오리 사냥철의 잔재로 보이는 엽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화요일 즉 6월 27일 낮 동안 1,000여 명의 미국시민과 우방국가의 시민들이 단 한명의 손실도 없이 소개(疏開) 되었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수송기의 흐름이 점점 줄어들더니 마침내 완전히 멈추었다. 미국 시민권자로 알려진 모두가 침략지대로부터 소개됐다. 거기에는 이 낯선 나라로 비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을 안전하게 데려와 달라는 축복을 빌었던 많은 기도가 밤마다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해가 빛났던 맑은 하늘과 고요한 달빛이 비쳤던 밤은 이틀이 지난 저녁부터 날씨가 급변하여 먹구름이 내려와 비를 퍼붓기 시작했다. 작전상황실은 서울 가까이에 있는 김포 비행장까지 수송해주라는 우리 특파원들의 요구사항을알렸다. 그러나김포가북한군의수중에떨어졌기때문에더이상의비행은 없었다. 이러한 전쟁 상황은 나라를 지키는 데 이바지하고자 긴급으로 P-51 무스탕 전투기의 조종법을 배우기 위해 바로 전날 한국을 떠나 이곳에 도착한 한국 공군의 젊은 조종사들이 어떤 기분일지 나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미국인 교관은 한국공군의 풋내기 조종사들에게 희망 없는 임무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이 매우 기본 적인기술에숙달하도록자신이가르쳤기때문에앞으로 24시간안에공중에서그들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확신한다고 내게 말했다. 교관의 통역이 영어를 말하지 못하는 50 l Ⅲ. 1950년 한국 This is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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