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전쟁이다!

이것이 전쟁이다! 해가 내려갈수록 화염이 점점 높이 올라가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였다. 부서진 조종석 창문으로부터 연기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 내부에서 점점 더 밝은 빛을 내고 있는 불을 보았다. 그 조종실의 불은 좌우 창문을 통해서 그리고 천측 창 위로 타올랐고, 이어서 조종석 앞으로 솟구쳤다. 곧 비행기 앞쪽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비행기의 앞은 타버렸고, 거대한 꼬리날개가 천천히 하늘을 향해 곤두 서면서 오른쪽 날개가 폭발했다. 수원으로 돌아오면서 우리의 전진은 길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 피란민들의 거대한 흐름에 의해 거의 완전히 차단되었다. 어떤 북한 전투기도 그 길을 아직 폭격 하기시작하진않았지만, 누구도그것이언제시작될지는몰랐다. 어둠의보호아래서 한국인 전 인구가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온갖 종류의 차들이 쟁기로 밭을 가는 것 처럼 피란 군중을 따라가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차들이 나뭇가지들로 두껍게 위장을 한 한국군과 경찰들을 가득 태우고 있었다. 거기에 어떤 공황의 증거가 보였던 것은 아니지만 리더십은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은 단지 남쪽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는 대 집단과 만난 것처럼 보였다. 그날 오후 기차역에서 나는 기차를 온통 그 자신들로 덮어 장식하고 있는 듯한 피란민들을찍었다. 그들은애처롭게보였고지금은매일볼수있는그런모습이었다. 내가 그리스나 팔레스타인, 인도, 중국 등에서 찍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오히려 더 잘 입었고 훨씬 깨끗해서 이들과는 달랐다. 이들은 불확실한 과거로부터 약간 덜 확실한 미래로 향해가는 가난에 시달리는 소작농들이 아니었다. 그래도 소작농은 맘이라도 편하고 배는 곯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그들을 둘러싼 삶이 허물어지고, 남쪽으로 가는그길의끝에바다밖에는아무것도없다는것을알고있음에도불구하고그들은 피란길을 차분히 품위 있게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떤 방식으로라도 언제나 그 행렬에서 빠져나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에서 일하고 있음에 당황함을 느꼈다. 내가 피란민 중의 한 큰 아들이 부모의 안전을 위해 안간힘을 쓰며 손수레의 끈을 당기고 있는 동안 차분하게 수레 안에서 손잡이를 잡고 있는 늙은 부부를 우연히 만났을 때 나는 그 셋보다 덩치가 큰데도 내 작은 카메라만 무력하게 쥐는 부끄러움 말고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사진들이 이러한 Ⅲ. 1950년 한국 l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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