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전쟁이다!

상황에서 실제로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사령부로 돌아왔을 때 램버트가 자신이 모든 뉴스의 출처들을 확인했노라고 내게 말했다. 아무도 아직 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인 상황을 알지 못 했다. 명백히 북한군은 한강 바로 이북에서 재편성 중이었고, 새로 점령한 서울을 그들의 총사령부로 이용하고 있었다. 북으로부터 전차들이 한강 남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보고는아직없었고, 아무도북한군들이왜이렇게길게공격을멈추고있는지 몰랐다. 공산군들이 남침 시 사용한 전차들은 한국의 방어자들을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마비시켰고, 또 어떠한 응징보복을 생각 할 수도 없는 공황상태로 만들 었다. 6월 29일 여명 직후에 나는 사령부의 문안에 서 있는 약간 구부정하고 작고 여윈 장교를보았는데그는한국군의미·군사고문단단장으로새로부임한존처치준장이 었다. 그는 내가 한강을 따라 전개된 그의 병력에 대해 브리핑해줄 것인지 물었을 때 약간 아쉬운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바로 전날에 도쿄로부터 날아와서 아직도 그의 지휘체계를 확립하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듣자 하니 1/2 이상의 한국군 부대가 북한군의 첫 공격으로 차단되었거나 포로가 되었다고 했다. 거의 모든 야포도 손실 되었으나 그것은 단순히 버려졌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와는 달리 이 야포들은 사거리가 훨씬 긴 북한군의 소련제 포들에 의해 압도 당한 무기였다. 따라서 공산군의 포들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종심에서 아군의 보호를 받으며 포를 쏘는 대신에 전방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북한군은 그냥 간단히 한국군 포병 진지를 방어할 수 없도록 만드는 탄막사격만을 하면 됐다. 그러고 나서 모든 것들을 폭파하여 산산조각 낸 후 그들은 그 위를 유유히 걸어와 진지를 점령했다. 한국군 포들은 미제였고 그것들은 38선을 가로질러 그들이 마주한 무기경쟁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정부가 운용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전쟁 발발 5일 차인 6월 29일 목요일 아침은 아름답고, 맑고, 기분 좋게 온화한 날씨였다. 또한, 불행히도 전차 운용에 좋은 완벽한 날씨였다. 일본보다 적어도 수주일 후에 시작되는 한국의 본격적인 장마는 약간 늦어지고 있었다. 서울과 수원을 연결하는 도로는 아주 건조하고 단단해서 전차의 돌파 기동에는 이상적인 상태였다. 54 l Ⅲ. 1950년 한국 This is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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