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전쟁이다! 길가에 있는 논까지도 몹시 건조해서 거의 말라 있었다. 이런 날씨로 인해 미군 전투기들은 거의 매일 낮에는 꽤 넓게, 그리고 낮게 완만히 경사진 전장을 지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밤에는 미군기들이 그들의 기지로 복귀하게 됨으로써 북한군들이 어디에서 새로운 공격을 펼치게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새로운 보급품과 군용차량, 그리고 부대들이 어둠을 이용하여 북으로부터 내려왔을 것이었다. 이와 같은 것들이 그 목요일 아침에 처치 장군이 당면한 주요 문제였다. 수원비행장으로 돌아와서 나는 그날 오후 바로 직전의 적 공격으로 부상당한 공군 장병 2명의 후송 장면 사진촬영을 막 마쳤을 때, 경정찰기 두 대가 착륙했다. 정찰기 쪽으로 걸어가는 처치 장군을 보고 도대체 전방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좀 더 분명히 알아볼 생각으로 따라갔다. 그런데 포병 관측장교 대신에 정찰기로부터 내린 사람은 한국대통령 이승만이었다. 그리고 당시 주한 미국대사인 무쵸가 다른 한 대의 정찰기에서 내렸다. 그 학자 같은 늙은 신사와 우리 미국대사는 방금 그들의 생명을 건 비행을 했었다. 수원으로부터 약 90마일 남쪽에 있는 임시수도 대전에서 출발한 그들을 적 야크기 한 대가 불시에 덮쳤었다. 두 미군 조종사들은 나무 꼭대기 정도의 고도를 유지하고, 그 작은 정찰기의 방향을 재빨리 움직여 바꾸며, 능선과 계곡을 넘나들면서 야크기 조종사가 그들에게 사격할 기회를 절대 가질 수 없도록 노련하게 비행했다. 나는 이승만 대통령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정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가 방금 겪었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 - 그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과 같이 이 적나라한 순간에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 그를 보고 - 깊은 찬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활주로 옆에 있는 밭에 우리가 서 있었을 때 우리의 발아래를 쳐다보았던 그의 태도였다. 나는 이승만 대통령의 이 모습을 항상 기억할 것이다. 그는 아래위를 쳐다보며 부드럽고 온화한 표현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어쩌나, 우리 발들이 어린 콩 싹을 뭉개 버렸네” 적야크기의재공격에대비하기위해무쵸대사는이승만대통령을급히대기중인차량 까지안내하여서둘러비행장을떠났다.내가처치장군이그의사령부로향하는대통령을 수행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며 놀라고 있을 때, 다른 C-54수송기 Ⅲ. 1950년 한국 l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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