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전쟁이다!

이것이 전쟁이다! 이어져 있었다. 공격 2일 차 아침에 한국군들이 그 산의 두 굽 날의 언덕을 차지했고, 반면에 공 산군은 산봉우리와 정상 주변을 감시할 수 있는 토치카를 차지했다. 산봉우리와 산 정상 주변을 차지함으로써 공산군은 이론적으로는 산 전체와 계곡 바닥까지 통제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2일 차 아침에 그들은 분명히 포병의 지원도 받지 못하고 깊이 참호를 파고 들어가 있는 소규모의 수비 병력만을 정상 부위에 배치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한국군 포병들은 전혀 전력 손실을 입지 않고 적의 목표에 직접사격을 할 수 있었고, 구호소의 사람들과 보급 트럭의 이동, 그리고 탄약의 추진보급이 적 사격에 대한 추후의 염려도 없이 야지와 도로를 따라 이루어 졌다. 그것은 공격을 위한 교과서적인 가장 이상적인 조건이었다. 그 전날, 동해안의 포항 바로 북쪽의 모래언덕 지대에 있던 한국군 3사단과 함께 공격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나는 어떤 사진도 찍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한국 군인들이 매시간 막 밀고 나아갈 듯이 사격을 했었던 박격포와 기관총들을 침묵시키고, 미 해군과 공군의 타격을 기다리면서 모래언덕을 따라 파놓은 참호 안에서 거의 빈틈없이 촘촘히 앉아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특별한 관심을 잃어버린 나는 3사단이 새로이 재편성되어 경험 없는 부대로 채워 졌다는 핑계를 받아들였다. 나는 3사단의 좌측에 있는 전설적인 17연대가 속해있는 수도 사단 쪽으로 장비를 옮겼다. 17연대는 빛나는 전투 성과들을 거두었다고 보고 되었고, 바로 그날도 산허리를 맹렬히 공격하면서 282명의 적을 사살했다는 단신이 전해졌었다. 패리스 중령과 함께 공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정확하게 우리가 알 수 있을 626고지의 긴 남쪽 능선을 오르기 바로 직전에 나는 우연히 내 마음속으로부터 밀려 오는 모든 오래된 의심들이 일어나는 보고를 들었다. 분명히 내가 연대 지휘소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에 산의 북쪽 능선을 공격했던 그 장교는 자기 부하들이 정확 하게 계획대로 목표를 탈취했다고 보고했었다. 그런데도 사실은 그때 산 정상 부근 천 야드 이내에는 아직 활동하고 있는 한국군이 없었다. 그 연대장은 목표를 탈취 했다는 희소식을 사단으로 보고했고, 사단은 군단으로 보고했다. Ⅲ. 1950년 한국 l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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