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전쟁이다!

에서 가장 뛰어난 싸움꾼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는 뛰어난 리더십으로 승진을 하고 서울에 주둔하고 있는 최고 부대인 수도사단 전체의 지휘권을 맡게 되었다. 또한 백인엽 대령은 공산군이 38선을 넘어 쇄도해 내려올 때 그들과 싸운 전투에서 부상을 세 번이나 당했다. 전쟁이 일어난 그 날에 17연대는 옹진반도에 주둔하고 있었다. 공산군이 침공한 첫날옹진반도는서울이나후방과의모든통신이끊겼다. 그때백대령은다른한국군 지휘관이나 미군 지휘관과는 아주 다르게 이 전쟁에서 아무도 하지 않았던 그 무엇 인가를 했다. 그는 38선을 넘어 공산군을 향해 북쪽으로 공격을 명령했고, 해주시 의 핵심부를 점령했다. 그는 침략자들을 공격하여 북으로 퇴각시킨 유일한 한국군 장교였으나그의연대는완전히적에게포위되었고, 이번에는포위를뚫고아군이있는 남으로 공격할 것을 명령했다. 다시 한 번 그는 연대병력을 데리고 적의 중심부를 공격하여 38선을 다시 넘어온 후 2500명의 연대병력이 다시 북진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보고를 함으로써 한국군 수뇌부의 전 일반 참모들을 매우 놀라게 했었다. 지금 그의 사단본부로 사용하고 있는 퀴퀴하고 후미진 옛 교사에서 그는 자기의 지휘소로 온종일 넘쳐흘렀던 작전상황에 대한 진상을 감춘 허황한 보고들을 파헤 치고 있었다. 내가 아직 산의 능선에 있을 때인 오후 늦게야 백 대령은 직접 진실을 알게 되었었다. 그들이 공격의 실패를 그에게 감추려고 한 것도 충분히 잘못된 사실 이었지만, 그들 바로 위에 적들이 있고, 고립되어 후방의 지원을 위한 어떤 직접적인 접촉도 끊어진 626고지 주변 전방 진지에 어떤 보살핌도 받지 못한 부상병들을 남겨 두고 왔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격노케 한 것 같았다. 그는 아직도 17연대 병사들을 자기 자식처럼 여겼다. 그들은 그를 사단장으로 만들어준사람들이었다. 그는그들과함께싸웠고그들과함께피를흘렸다. 회의실에 있는 누구도 그가 발을 구르고, 아직 멜빵끈을 걸친 왼팔을 휘두르고, 붕대 감은 오른 손으로 문을 잡고 흔들 때, 그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지는 않았다. 얼어붙어 있던참모들이흩어져어둠속으로나갔다. 전조등이켜지고자동차시동소리가들리 더니 그들은 전방으로 출발했다. 나는 패리스가 불참했기에 내가 한국군 스타일의 마지막 군법회의에 입회할 수 있었지 않았나 하고 혼자 생각했다. 70 l Ⅲ. 1950년 한국 This is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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