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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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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평화기념관 공존의 광장 앞에는 16개 전투지원국과 6개 의료지원국의 국기가 1년 365일 휘날리고 있습니다. 22개 참전국의 주요 참전사를 보고 국가별 군가를 들으며 그들의 용기와 희생,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겨봅니다.

공존의광장 -16개 전투지원국과 6개 의료지원국의 국기와 각 나라의 설명으로 이루어진 표
미국 국기

미국

∙ 6·25전쟁에서 UN군의 핵심축 담당, 파병 규모도 최대 규모

* UN참전국 195만 명 중 미군이 179만 명으로 절대 다수(92%)

∙1950년 7월 5일 미 지상군 스미스특수임무부대가 오산부근에서 북한군과 첫 교전

∙ “한국으로부터 철수하지 않는다”는 맥아더 원수의 지침에 따라 1950년 8월 중순까지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하기 시작하여 부산 교두보 확보

∙ 서울 조기탈환을 위해 인천상륙작전 강행, 북진하여 평양 탈환/후퇴

∙ 지평리전투에서 중공군 4개 사단을 맞아 4차 공세를 막음

∙ 중공군 제5차 공세 이후 정전협상이 전개되는 동안 피의 능선전투, 단장의 능선전투, 불모고지전투, 삼각고지전투 등의 진지전 수행

∙ 1953년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영국 국기

영국

∙ 두 번째 규모의 병력 파견

∙ 전쟁 초기부터 육․해군 및 해병대 파견, 미국과 같이 6·25전쟁 주도

*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국가의 한국전 참전에 영향을 줌

∙ 1950년 9월 4일 영국군 제27여단 낙동강방어선에 투입, 북한군의 공세 격퇴

∙ 중공군 제5차 공세 시 임진강 남안의 설마리전투

∙ 영국해병특공대는 인천상륙작전 시 군산에서 양동작전에 참여

호주 국기

호주

∙ 미국에 이어 규모는 작지만 육·해·공군 모두 참전한 국가

∙ 1950년 6월말 호주해군 프리깃함, 구축함은 미 극동해군사령부에 배속/참전

* 일본-부산 간 수송선단 엄호 임무, 인천상륙작전 시 항공모함 엄호 임무

∙ 1950년 7월 호주공군 제77전투대대 참전

∙ 1950년 9월 호주 지상군 선발대, 주한호주 후방사령부, 제3대대 부산 도착

* 사리원전투, 영유전투, 박천전투, 이천전투, 마량산전투, 가평전투 등

∙ 1951년 4월 중공군 공세, 24시간 혈투 끝에 격퇴, 적의 가평 진출을 저지한 공로로 미국 대통령 부대표창 수상, 격전지 죽둔리에 제3대대 참전기념비 건립됨

네덜란드 국기

네덜란드

∙ 1950년 7월 구축함 1척 한국해역으로 급파 영국극동함대와 합류

* 이후 구축함 3척, 프리깃함 3척 등 총 6척이 교대로 해상초계, 봉쇄 등 업무 수행

∙ 정부보다 먼저 민간이 한국참전 지원병 임시위원회 조직 참전 촉구

∙ 1950년 11월 정부에서 지원병 모집, 부산 도착, 미 제2사단에 배속 활동

* 횡성전투, 325고지 방어, 인제전투, 대우산전투 등

∙ 1953년 10월 1일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표창 수상

캐나다 국기

캐나다

∙ 1950년 7월 30일 캐나다 구축함 3척 미 극동해군사령부 배속작전 수행

* 참전기간 동안 총 8척의 구축함을 3척씩 묶어 한국해역에 윤번제로 파견

* 부산-일본사이 수송선단 호위, 인천상륙작전 시 수송선단 호위, 항공모함 호위 등

∙ 1950년 11월 ‘캐나다 육군 특별부대’모병 활동으로 캐나다 25여단 창설

∙ 1950년 12월 PPCLI 2대대 부산 도착, 영연방 제27여단으로 배속 작전 수행

* 흥천진출전, 가평전투, 고왕산전투 등

뉴질랜드 국기

뉴질랜드

∙ 1950년 7월 프리깃 2척 한국해역 파견, 미 극동해군사령부에 배속/수행

∙ 1950년 12월 파병부대 모병, 제16포병연대 창설/파병(Korean Force, 약칭 Kayforce)

∙ 영연방 제27여단 배속, 중공군의 포위공격 격퇴(가평전투, 마량산전투)

∙ 가평전투의 공로로 제16야포연대는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표창 수상

프랑스 국기

프랑스

∙ 1950년 11월 순수 지원병으로 구성된 프랑스군대대 부산항 상륙, 수원 미 제2사단에 배속/작전 수행

* 2차대전 당시 외인부대 장군이었고 중장으로 예편했던 몽끌라르 장군이 대대 지휘

* 쌍터널전투, 지평리전투, 단장의 능선전투 참전

∙ 중공군의 2월 공세에 맞서 지평리전투를 승리를 이끈 공로로 프랑스 군대대는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표창, 미국 대통령 부대표장, 프랑스공화국 표창 수상

필리핀 국기

필리핀

∙ 1950년 9월 지상군 1개 대대전투단을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파견

* 오랜 기간 스페인․미국․일본의 식민지배로 전쟁에 시달렸고 6·25전쟁 발발 시 후크 반란으로 국내가 불안하였지만 아시아에서 공산세력 확장 방지를 위해 파병

∙ 낙동강 방서선 사수가 위급한 상황임을 고려, 최정예부대 제10대대 파병

* 신계부근전투, 한강 진출과 서울 탈환, 군자산부근전투, 율동전투, 에리에 고지전투

∙ 정전이후에도 한국의 부흥을 위해 많은 지원을 했고 주력 철수 이후에도 UN군 사령부에 소수병력을 주둔시켜 UN군의 일부로서 정전협정을 감시함

튀르키예 국기

튀르키예

∙ 1950년 10월 17일 튀르키예군 제1여단 부산 도착, 미 제9군단에 배속

∙ 1950년 11월 중공군 제38군과 격전, 큰 손실(군우리전투)

∙ 1951년 1월 김량장(현 용인)전투에서 승전으로 튀르키예군의 용감성을 알림

∙ 1951년 11월 제2여단 양구 샌드백 캐슬전투

∙ 1952년 8월 제3여단 튀르키예군 3번째 부대로 참전, 중공군을 대파함으로써 네바다전초전은 제3여단의 진지 고수의지를 유감없이 발휘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기

남아프리카공화국

∙ UN 활동에 적극 참여, 1950년 7월 1일 대한민국 군사원조 결의에 지지성명 발표

∙ 1950년 11월 제2전비대대 부산 수영비행장 도착/미 제18전폭비행단에 배속

태국 국기

태국

∙ 아시아에서는 태국이 가장 먼저 지원의사 표명

∙ 1950년 11월 7일 태국함대(지상군 1개 대대병력, 적십자의무대 요원) 부산 도착

* 개성지역 방호와 철수 엄호작전 수행

∙ 태국함대는 병력 수송 후 미 극동해군사령부 제95 기동부대에 배속작전 수행

∙ 포크찹 고지전투는 중공군의 3차례 대대적 공세를 막음(‘작은 호랑이’라는 별명을 얻음)

∙ 태국의 참전은 “서구의 제국주의자들만이 한국에 병력을 파견할 것”이라는 소련의 선전을 일축하는 데 좋은 모범이 됨

그리스 국기

그리스

∙ 1950년 12월 제13수송기편대 창설 후 도착/미 제5공군으로 배속, 지상군은 부산에 상륙하여 미 제1기병사단에 배속 작전 수행

* 이천부근전투, 홍천-춘천-화천 진격전, 313고지(Scotch고지)전투, 노리고지전투)

∙ 1953년 6월 420고지(Harry고지)전투에서 중대규모로 연대규모의 중공군을 격퇴함으로써 그리스군의 용맹성 과시

∙ 1953년 가을 프랑스군대대 철수에 따라 공백을 메울 1개 대대 한국 도착

∙ 1955년 3월부터 철수 시작

벨기에 국기 룩셈부르크 국기

벨기에, 룩셈부르크

∙ 벨기에, 룩셈부르크는 지원병 모집 후 통합 대대 편성 파견

* 벨기에 현역, 예비역, 레지스탕스 출신 등 2천명 지원, 국방장관 메론도 포함
* 룩셈부르크는 인구 20여만 명으로 많은 병력 파견 곤란, 1개 소대 병력 포함

∙ 1951년 1월 벨기에-룩셈부르크군 대대 부산 도착/미 제3사단 제15연대 배속

* 동두천 진격전, 금굴산전투, 학당리전투, 잣골전투

에티오피아 국기

에티오피아

∙ 국내정세가 혼란하였지만 황실 근위대 차출 1개 대대 편성

* 하일레 세라시에 황제가 6·25참전 부대에게 강뉴(Kangnew)부대로 칭함

∙ 1951년 5월 강뉴대대와 지원사령부 요원 부산 도착/미 제7사단 제32연대 배속

* 적근산-삼현전투(미국 대통령 부대표창), 삼각고지전투, 요크․엉클전투(대한민국 대통령 부대표창 수상)

∙ 1개 보병대대 외에도 에티오피아 사령부와 UN군 연락장교를 파견, 적십자 소속 간호사를 UN군 병원에 파견, 전쟁 중 및 전쟁 후에도 UN국제아동긴급기금 등을 통해 의료약품을 한국에 보냄

콜롬비아 국기

콜롬비아

∙ 라틴아메리카 UN회원국 가운데 유일한 6·25전쟁 참전국

∙ 1951년 6월 콜롬비아 보병 제1대대 부산 도착/미 제24사단 제21연대 배속

* 금성진격전, 미주리선 방어, 덕현동전투, 불모고지전투

∙ 1951년 5월부터 1955년 10월까지 총 3척의 프리깃함으로 파견하여 윤번으로 참전

스웨덴 국기

스웨덴

∙ 영세중립국이었으나 UN의 대한민국 군사원조 결의에 야전병원단 파견

∙ 1958년 10월 2일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는 한국 정부 및 UN한국재건단과 협조하여 서울에 국립의료원 개설, 1972년 2월까지 직접 운영

∙ 1950년 9월 스웨덴적십자병원 부산 도착/미 제8군에 배속, 부산상고에 병상 400개 규모 후방병원 개소

* 1951년 후반부터 전선이 소강상태에 이르자 민간인 환자 치료. 1952년 초에는 민간진료소 별도 개소

∙ 정전이후 민간인 치료업무에 주력, BCG접종 실시, 결핵 퇴치에 일익

∙ 1957년 7월 철수 시까지 한국 파견 의료지원부대 중 가장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중환자 치료, 한국 의료기술 높이는데 크게 기여

인도 국기

인도

∙ 비동맹노선을 견지한 국가로서 UN의 대한민국 원조 결의 시에는 기권했으나 한국 민간인 구호 결의에는 동의. 의료지원부대 파견 결정

∙ 1950년 11월 60공정야전병원부대 부산 도착/영연방 제27여단 등 영연방부대 지원

∙ 1953년 8월 말 인도정부가 중립국포로송환관리병단을 한국에 파견, 60공정야전병원부대 영연방 제1사단을 떠나 관리병단과 합류

* UN은 포로 송환과 관련된 주요업무를 인도에 위임했고 인도는 관리병단 지휘

덴마크 국기

덴마크

∙ UN회원국 중 제일 먼저 의료지원 제공의사를 밝히고 1950년 8월 병원선 유틀란디아호 한국에 파견 조치

* 8,500톤급 유틀란디아호는 의무요원, 행정요원, 선박운항요원(100여 명)을 태우고 1951년 3월 부산 도착

∙ 1953년 3월부터 인천기독병원과 협조하여 민간인 치료 확대

∙ 정전 후 병원선이 보유하고 있던 의약품, 의료기재를 UN한국재단을 통해 민간병원에 기증. 스웨덴, 노르웨이와 협조하여 국립의료원 설립․운영에 참여

노르웨이 국기

노르웨이

∙ 1950년 7월 초 해상운송을 위한 선박지원 제의 및 적십자를 통해 지원금과 의류 송부

∙ 1951년 6월 83명으로 구성된 이동외과병원 한국 도착/미 제1군단에서 의료 지원

* 수술실, 치과, 방사선실 등 최신 의료장비 구비, 야전병원 수준과 능력을 갖춤

∙ 스웨덴, 덴마크정부와 협조하여 국립의료원 설립과 운영에 적극 참여

이탈리아 국기

이탈리아

∙ 6·25전쟁 발발 시 나토 창설국이었으나 UN 비회원국으로서 의료부대 파견 결정

∙ 1951년 11월 제68적십자병원 편성 부산 도착

* 150개 병상에 내과, 외과, 소아과, 치과, 방사선과 운영, 민간치료도 병행

독일 국기

독일(서독)

∙ 1953년 4월 UN군 지원을 목표로 의료지원단 파견을 결정하여 공식통보하였으나 정전협정 이후였던 1954년 파견되어 전상자보다는 민간인 치료활동 전개

*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이후에 파견되어 의료지원국에서 빠졌으나, 2018년 6월 독일의 의료지원활동이 재조명되며 국방부에서 ‘독일’을 UN 의료지원국으로 공식 지정

∙ 독일적십자사를 통해 지원되었고 부산에 있는 부산여고를 인수하여 서독적십자병원 개소

∙ 1954년 1월 선발대가 도착하여 5월 17일 병원 개원, 1959년 3월 14일 폐원

* 250개 병상에 내과, 외과, 치과, 방사선과, 산부인과, 약국 운영

∙ 한국인 의료기술요원 양성에도 크게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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